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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곳곳에 ‘바보도 한다’ … 볼보 굴삭기 표준된 ‘창원 스타일’

볼보코리아 창원공장 혁신 현장 네 일 내 일 없는 한국식 문화 결합 팀워크 강화 팀별 작업속도 조율 전 세계 64곳 중 역대 최고 평가 삼성으로부터 인수 뒤 단숨에 흑자 미국·독일·러시아 공장서 배워가 2조 매출 눈앞, 협력사도 6배 성장

지난 17일 방문한 볼보건설기계코리아 경남 창원공장 곳곳엔 이런 표어가 붙어있다. 일본에서 나온 말(ポカヨケ)로 ‘바보도 한다’(fool proof)는 뜻이다. 사무실의 조명 스위치, 대형 건설장비의 온·오프 버튼, 생산 라인에서 나사를 조일 때 어떤 장비부터 챙겨야 하는지 등 실수를 막기 위해 만든 안전장치와 안내 패널 맨 위에 이 문구가 쓰여 있다. 문구를 부착한 이유는 하나다. 여러 사람이 찾아낸 최적의 작업 방식을 전 직원이 매뉴얼·교육 등을 통해 공유하면서 효율을 높이고 실수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매뉴얼을 지키는 게 바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우니 실수하지 말자’는 뜻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디테일이 모여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우선 창원 공장 제작 시간이 다른 세계 다른 볼보 현장에 비해 짧다. 또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고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하기도 쉽도록 설계돼 있다.

이렇게 된 비결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석위수(68) 대표는 “실수하면 영어로 변명하는 것이 잔업보다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일 네 일 구분하지 않고 해버리는 한국적 직장 문화, 갑자기 회사 주인이 바뀌면서 닥친 위기감이 더해져 현재의 창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어를 강조하던 삼성중공업 문화에서 1998년 볼보로 넘어가며 하루아침에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스웨덴 회사가 되자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석 대표는 “납기를 맞추지 못하거나 불량품이 나오면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지만 문제가 없으면 그냥 지날 수 있어 편했다”고 했다. 포카-요케도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됐다.

27년 자동차 생산으로 시작된 볼보는 99년 자동차 부문을 포드에 매각한 뒤 건설기계·트럭·버스·선박에 집중하고 있다. 이중 건설기계본부는 벨기에에 있고 생산시설은 전 세계에 퍼져있다.

일 빨리하고 말이 적은 ‘창원 스타일’은 볼보 편입 몇 년 만에 굴삭기 제작의 표준(VPS)으로 자리 잡았다. 일처리와 능률에 대한 글로벌 본사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창원 스타일은 곧 다른 굴삭기 거점에 적용됐다.

우선 2006년께 독일 굴삭기 공장을 모두 뜯어고쳤다. 창원 방식을 유럽 직원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독일은 상단·하단·굴삭기 팔 등 각 부분을 만드는 조직이 각각 떨어져 있는 섬조직 형태였다. 작업의 속도를 조직 별로 조율할 수가 있어 업무 속도의 편차가 생긴다. 장점은 자율성, 단점은 생산성 약화다.

반면 창원은 삼성 시절부터 도요타 생산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앞 뒤 팀과의 작업 속도 조율과 팀워크가 중요하다. 처음에 저항이 심했지만 2010년부터 미국, 러시아, 인도, 중국 굴삭기 공장 모두 순차적으로 창원 스타일을 도입했다. 볼보와 중국 고유 굴삭기 브랜드인 합작사 SDLG를 만들 때도 창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배내기 QES/ISO 부장은 “창원 공장은 볼보 건설기계 64개 공장 중 그룹 심사평가에서 2012년 역대 최고의 점수를 받으며 그룹 내 최고 공장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심사는 안전·품질·납기·원가·환경·인재양성의 지표 등 22개 분야를 평가하는 것으로 창원은 매년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으며 현재는 2위를 지키고 있다.

물론 직원 노력이 전부는 아니었다. 창원공장은 삼성 중공업에서 볼보로 5억 달러에 팔릴 당시 연간 670억원 적자를 내고 있었다. 볼보는 인수 직후 약 9000만 달러를 투자해 굴삭기 연구개발(R&D) 기능을 강화했다. 제품은 중장비 10종에서 굴삭기 하나로 과감하게 단일화했다. 첨단기술개발센터를 만들어 연구원 300여 명이 오직 굴삭기에만 매달리게 했다. 볼보그룹도 미국 캐터필라에 비해 취약했던 굴삭기 분야에서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창원은 볼보에서 가져간지 1년 반 만에 253억원의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 2015년 매출액은 1조5950억원을 올렸고, 지난해엔 이와 비슷한 수준, 올해는 약 2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창원이 볼보의 굴삭기 생산 거점으로 자리잡자 인근 협력업체는 305개(2001년 기준)에서 358개로 늘어났다. 굴삭기에 들어가는 부품의 85%가 한국산이다. 특히 이중 보안이 필요한 핵심 부품 77종은 창원 공장에서 만들어져 세계 생산기지로 보급된다. 덕분에 볼보 창원 공장 협력사의 매출은 2001년 대비 약 6배 늘어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창원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볼보가 2014년부터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에너지 감축 프로그램 성적 때문이다. 볼보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와 협약을 맺고 202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 15만 MWh 감축하기로 약정했다.

이에 따라 창원공장도 7년 동안 사용량을 8575MWh 줄여야 했다. 이는 온실가스 약 4000t에 해당한다.

처음엔 ‘귀찮은 약속’이라는 생각에 직원 불만도 많았다. 하지만 특유의 발동이 걸리자 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에너지 개선 5단계를 만들어 실천하면서 3년 동안 감축 목표치의 60%를 달성해버린 것이다. 공장이 가동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에너지가 생산 일의 8%까지 떨어지자 본사에서도 놀라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볼보 그룹의 유럽 공장은 통상 20~30%를 쓰기 때문이다.

사무실의 창가 자리 조명 스위치를 어두운 곳과 분리한다거나, 예열 기계에 타이머를 달아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것과 같은 작은 아이디어가 모여 만든 성과다. 추가 노력 없어도 알아서 절감할 수 있는 자율에너지절감을 만드는 게 목표다. 석 대표는 “내키지 않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마음 먹자 모두가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며 “간부들도 공장 내에서 차량 이용을 하지 않고 걸어다니면서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J가 가봤습니다] 공장 곳곳에 ‘바보도 한다’ … 볼보 굴삭기 표준된 ‘창원 스타일’